일진이 사나울래야 이렇게 사나울 수가 없다. 전날 동이 틀 때까지 테이블 뛰느라 숙취고 피로고 하나도 안 풀린 건 둘째 치고 고생한 보람 하나 없이 고정에게 반품까지 당했다. 귀여운줄 알고 샀더니 호스트 주제에 눈빛이 재수없다나 뭐라나. 점장님한테 죽어라 깨지고 짜증나서 오프를 썼는데 이번에는 또 다른 고정 손님에게 호출이란다. 그런데 그게 또 오프라고 거...
#1."어? 니엘이 형...?"진영이 웃을 때면 마음이 간질거렸다. 뭐가 그렇게 좋을까 행복할까. 한 번도 아픈 적이 없던 사람처럼 맑게 웃는 얼굴이 내게는 족쇄처럼 늘 발목을 잡았다. 원망하고 미워해보려고도 했지만 좀처럼 안 됐다. 진영은 정말 아무 것도 모르는 얼굴을 하고 웃었다."형, 맞지? 와, 진짜 니엘 형이지?"지금처럼 양쪽 눈을 개구쟁이처럼 구...
손으로 넘길 때마다 소년의 잿빛 머리칼이 차르르 이마 위로 쏟아졌다. 자꾸만 눈을 찌르는 게 성가셔 두어번 넘기던 것도 그나마 손에 힘이 빠져 멈추었다. 깜깜한 와중에도 달빛을 반사해 쉴새 없이 반짝이는 눈은 머리색과 같은 잿빛이었다.소년의 눈동자가 힘 없이, 느릿하게 깜빡이다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제 앞에 드리운 그림자를 올려다봤다. 상대의 위압적인 키와...
*녤딥전력 주제 '너로 수놓은 밤'으로 참여합니다. *매우매우 짧은 글이에요 *그냥 이런 분위기가 보고 싶어서 썼어요. ㅠ 희맑은 아침이었다. 동면에서 서서히 깨어나는 것처럼 눈 앞이 뿌옇게 번지다가 점차 밝아졌다. 눈꺼풀을 천천히 들어올리는 사이로 비스듬한 아침 햇살이 부챗살처럼 퍼진다. 아침이구나, 진영은 직감적으로 알았다. 바다처럼 높아진 하늘이 말해...
"선배님 저랑 연애하실래요?"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중에 배진영이 꺼낸 말이었다. 물론 같이 버스를 기다리는 로맨틱한 장면은 결코 아니었다. 좀 전까지만 해도 정류장에 있는 다니엘을 발견하자마자 똥 밟은 표정으로 오던 걸음을 멈추던 진영이었으니 연애하자는 말이 나올 만한 상황도, 사이도 아니었다. 그 말이 얼마나 현실감이 없었냐면 휴대폰으로 게임...
"너희가 살아남으려면 여기에서 얼굴과 직함을 꼭 기억해야 할 사람이 딱 두 명 있는데 하나는 우리 방송국 사장님. 너무 평범한 옆집 아저씨처럼 생기셔서 다들 인사 안 하고 그냥 지나치거든." 손바닥에 올린 캔디형 껌을 입 안에 털어넣으며 성우가 말을 이었다. "근데 또 우리 사장님이 인사성 없는 애들을 그렇게 싫어하시네? 뭔 말인지 알지?" 띵- 엘리베이터...
* BOSS Ep.1을 읽고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그들의 과거와 현재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엄청난 스크롤 압박 주의. 내게는 네가 전부야 Nothing without you. 시끄러운 소리가 멈췄다. 귀가 얼얼할 정도로 울리던 소음이 멈추고 거짓말처럼 침묵이 찾아왔을 때, 바그작. 바그작. 깨진 유리 조각 위를 꾹꾹 누르며 다가오는 구두 굽 소리가 나즈...
‘작가님, 잠깐만요….잠깐…’ 진영의 더운 숨결이 귓가에 닿았다. 긴 목덜미를 따라 입술을 훑으니 코에 끼치는 달콤한 향. 마른 팔이 내 목을 감고 낮은 탄성을 내뱉었다. 목을 긋는 그의 특유의 쇳소리가 끝이 뒤집어지면서 야한 신음소리를 냈다. 자꾸만 뒤로 휘는 그의 등허리를 한 손으로 받치고 얼굴을 내려다본다. 조막만 한 얼굴에 박힌 동그란 눈이 나른하게...
책이었다면 마지막 챕터 혹은 마지막 페이지의 중간 어디쯤일까. 결말을 이미 알아버려서 더 이상 뒷부분이 궁금하지 않은 처량하고 후미진 그런 곳. 열정도 분노도 슬픔도 활활 타고 사그라져버린, 그런 계절의 끝.나는 이곳에 서서 저 멀리 떨어진 그에게 인사를 고한다. 외로이 달려온 길에서 홀로 맞은 이 끝이 우습지 않도록 가능한 아름답게.# #“배진영! 진영아...
대단했지. 하루가 멀다 하고 새 떡밥이 떨어졌거든. 오바 좀 보태서 여기 일산 일대가 발칵 뒤집어질 정도였으니 얼마나 대단했겠어. 아니, 생각해 봐. 그 유명한 탈마루 고등학교 얼천(얼굴천재) 박윙크랑 탈씨구 고등학교 얼천 딥다크의 조합이라니 말이 돼? 비주얼만으로이미 유명인사였던 둘이야. 둘 중에 한 명이라도 학원가에 떴다 하면 난리도 난리가 아닌데, 그...
#주문을 걸어 2편# 박지훈의 말이 맞았다.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자꾸만 몸이 나른해졌다. 아무래도 열이 또 오르는 모양이었다. 파란 약을 미리 먹어뒀으니 망정이지 하마터면 반송장 상태로 담임쌤 차에 실려 집에 갈 뻔했다. 고열 때문에 어지러워서 똑바로 걷는 게 좀 불편하기는 했는데 집까지 가는 건 크게 문제 없었다. 적어도 내가 기억하기에는 그랬...
"형아 나 궁금한 거 있는데에..." "응, 뭔데 진영아?" "형아는 눈이 왜 금색이야? 가끔 번쩍번쩍 하자나" "..." "나 봤는데에... 형이 막 눈 빛내는 거" 박지훈이 우리 집에 들어와 산 지 딱 일년이 되었을 때, 그러니까 내가 여덟 살, 형이 아홉 살 때, 나는 그 동안 마음속에서 수십 번도 더했을 그 질문을 꺼냈다. 우리 엄마 손을 잡고 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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